물리적으로 기억에 남는 가장 오래 된 텔레비전은, 어머니께서 보험왕 같은 걸 하시고 회사에서 상품으로 받아 오신 골드스타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 상단에 VHS 비디오 테잎을 넣을 수 있는 기계가 한 몸체 (요즘으로 이야기 하면 올인원 같은 느낌이다) 로 되어있었다. 리모콘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 리모콘은 조금 생소했던 물건으로 기억난다. 그래서 굳이 리모콘을 사용하지 않고, 왠만하면 TV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TV를 조작해야했다. 채널이나 볼륨등이 초록색 글씨로 화면에 나왔다. 왜 하필 초록색일까 라는 생각을... 당시에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빨간색이나 노란색이 아닌 왜 하필 초록색이었을까? TV송출이 끝나고 늦은 시간에 그 지지직 거리는 화면에 초록색 글씨로 떠오르는 채널 숫자 (그런 정보는 상단 좌측에 송출되었다) 그 숫자를 무작정 올려도보고 낮춰도 보고 했다. 비디오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표시되는 PLAY 라는 단어, STOP 이라는 단어, REC 라는 단어, FF 라는 단어 등이 생각난다 (되감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텔레비전은 평면 텔레비전이 나오기 전의 것이라서 화면이 볼록한 브라운관 텔레비전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게도 제법 무겁고 혼자 겨우 들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TV가 2대가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오래된 골드스타 TV를 버지리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중학교 시절에는 그 골드스타 TV를 이용해서 성인영화를 녹화한 적이 있는데 (고등학교에 가기 전이었다) 화면만 OFF 시키고 예약 녹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안방에 있던 TV를 거실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딱 한 번 밖에 시도를 안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렇게 열심히 녹화했던 성인영화 (단순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형의 심장 초음파를 녹화한 비디오 테잎도 있었다. 그런것을 본다고 한들 의사가 아닌이상 병이 있다거나 병이 나아졌다거나 하는 것을 알수 없을 텐데, 형이 병원에 다녀오고 난 다음날이면 테이프가 하나 둘 늘었다. 그리고 그 테이프는 녹화가 덮어지지 않게 별도로 관리됐다. 지금은 그런 정보가 의료 기록으로써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굳이 그런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예인에 대한 열망 과 동경이 높은 것 같다. 꼭 그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광고 모델이 연예인이다. 연예인들이 결혼 하는 상대방에 대해서 "비 연예인" 으로 표현을 한다. 연예인과 연예인이 아닌 삶의 이분법적 사고가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겠지만, 내가 일반적인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회사원 비 회사원을 굳이 구분해서 부르지는 않는 것 같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는 것, TV에 나오는 것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 TV에 나와서 (TV에 나오지 않더라도)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예뻐지고 싶고 잘생겨지고 싶고 날씬해 지고 싶어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얼굴..." 이런 가사를 가진 동요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노래를 듣고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생각하니 엄청난 가스라이팅에 당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에 대한 욕망, 미디어에 노출되고자 하는 욕망, 예뻐지고 싶은 욕망, 춤추고 노래하는 행위에 대한 욕망들... 그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발랄한 멜로디를 가진 동요 한 곡이었던 것이다. 이 동요를 듣고 자란 세대들은 무의식적으로 텔레비전은 좋은 것이고, 텔레비전에 나온것은 좋은 것이고, 예쁜 얼굴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 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가끔 던지는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는 말은 그 만큼의 힘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동요는 더이상 들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 같아서는 어딘가에 청원을 넣어, 동요 재생을 금지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뉴스도 보고, 날씨도 보고, 무작정 채널을 돌리면서 볼만한 채널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일방적인 송신과 수동적인 수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예전의 텔레비전은 볼게 없으면 그냥 꺼버리고 다른 일을 해도 되었는데 요즘의 OTT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옛날에 텔레비전이 있었다면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다. 스마트폰은 텔레비전보다 더 경계해야할 매체임은 분명하다. "미디어의 이해" 를 읽고 정리해 둔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테크놀로지와 직결되는 미디어가 그 내용인 메시지보다 중요하다. 미디어(매체)는 인간기관의 확장, 감각기관의 확장,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매스미디어의 내용이란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의 테크놀로지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으며 사람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매체 그 자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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