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에드바르 뭉크 :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를 보고 왔다. 아내와 신년 계획으로 1년에 3회 이상 전시회를 보러 가기로 했기에, 전시회 관련 소식을 항상 받아보고 있다. 해당 전시회 서울신문의 창간 12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전시회라고 한다.
아침 느즈막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고속터미널 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 뒤 이동에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고 전시회를 보러 갔다. 미술관에 네시쯤 도착했는데, 입장 대기줄이 생각보다 있어서 놀랐다. 검표 직원이, 동선이 자유롭기 때문에 역순으로 전시회를 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작품의 순서를 빠르게 보고 마지막 섹션부터 역으로 관람했다. 이번 전시회의 꽃은 역시 뭉크의 대표작 {절규} 였다. 생각보다 작품의 크기가 작아 놀랐는데, 미디어를 통해 {절규}를 접할 때는 원본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나리자를 처음 봤을 때 느낀 것과 비슷했다.) {절규} 이외에도 다른 작품들이 많았고 판화와 유화가 많이 있어 충분히 볼만한 전시회가 되었다.
나는 미술관에 가는것을 좋아한다. 박물관도 좋아한다. 미술관 때문에 해외 여행을 계획할 정도가 되었다. 뉴욕의 MoMA 와 MET, 자연사 박물관 등을 여행했고,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뎅 미술관 도 여행했다. 런던은 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대영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등을 혼자서도 갔었고 작년에는 아내와도 다녀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미술에 조예가 깊다거나 예술에 조예가 깊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언제나 읽어보고 싶었지만 읽어보지 못하고 있고, 읽어본다고 한 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범주의 이야기다. 문제는 봐야 할 예술 작품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해석이나 비평도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내 나름의 해석이나 비평을 해 본들 한정된 지식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특정 작품에 대해 의견을 펼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거나, 조각 작품을 보거나, 사진을 보거나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이런 예술에 대한 탐닉은 대학생 시절 부터 생겼던 것 같다. 나는 다행히도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대림 미술관이 가까운 편이어서 대림 미술관을 제일 많이 갔던 것 같다. 디터 람스 전시회도 생각이 나고 몇몇 사진전도 생각이 난다. 삼청동에 국립현대 미술관이 생기고 나서도 전시회를 보러 몇 번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청동에 있던 국제 갤러리도 기억이 난다. 한남동에 대림미술관 브랜치 같은 게 생겼던 것도 기억이 난다. 누구와 무슨 전시를 봤는지는 기억이 나는 것도 있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다.
쭉 적어놓고 보니, 나는 그저 이런이런 미술관을 좋아하고 이런이런 전시회를 봤다는 식의 자랑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미술관에 갈 때 마다, 작품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타인의 예술 소비 방식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 최근 나의 관람 목적이 되어버렸다. 작품의 사진을 찍는다 한들 집에 가서 그 사진을 다시 보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예술 작품을 살 돈이 없기 때문에, 작품의 이미지라도 갖고 싶은 것뿐이다.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술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예술작품을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거나 (주로 함께 간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예술작 작품을 등지고 그것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경우이다 (셀카모드로 충분히 가능하다). 후자는 역시, 예술 작품을 살 돈이 없기 때문에 그것의 이미지를 단순히 소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출하는 것뿐이다. 전자의 경우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술작품을 소비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 목적이다. '나는 이런 작품을 보고 있어, 이런 작품을 봤어, 이런 작품을 볼 줄 알아' 하는 식의 과시욕이 (무의식 적으로) 바탕이 된 행위인 것이다. 그런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애초에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무엇이 예술인가 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 하물며 여기에 대한 답을 본인 스스로 찾지도 않는다. 남들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예술이며 그것을 소비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 그들이 미술관에 방문하는 유일한 목적이다.
한 가지 더 안타까운 것은, 요즘의 사회 분위기가 나만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이런이런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작가는 이런이런 기분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견을 말해도 (언제까지나 의견일 뿐이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만약에 어떤 작가가 살아 돌아와서, 자기 작품에 대해 기술된 해석이나 비평을 보고 그것은 사실 그런 의도로 한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나라는 개인으로 부터 발생하였고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내가 어떤 그림에 대해 그런 의견을 내 놓으면 아내는 누가 그렇게 이야기 했어? 라고 되묻곤 한다)
그리고 나는 오디오 가이드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작가나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작품의 관람이나 기억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미리 쓰여진 해석이나 판단은 나에게 선입견을 줌으로써 나의 인식과 이해에 한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판결문이 되어선 안된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나와 타인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올바른 예술 관람이 시작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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