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려 애써본다. 하지만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최근 본가에 갔을 때 사진을 정리해서인지,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몇 있지만, 사진에 대한 기억일 뿐 그 너머의 일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으로 남아있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기가 어려워진다. (떠올려진 이미지가 순수 기억에 기인한 것인지, 어딘가에서 본 사진에 기인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으로 남이있지 않은 기억 중 하나를 떠올려 보자면, 주공아파트에 살던 시절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플라스틱 장화에 든 (싸구려) 과자 선물 세트가 기억난다. 형도 똑같은 선물을 받았다. 나는 빨간색 플라스틱 장화를 양 발에 신어보고 신나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보다 더 오래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오래된 기억 외에도 비교적 최근의 일들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나는 내가 어떤 코로나 백신을 맞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이자였을까? 모더나였을까? AZ 였을까? 한 번 밖에 맞은 기억이 없어서 아무래도 AZ 인 것 같다.
뭐랄까,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들이 없다. 기억이 나더라도 찰나의 순간이 전부인 것 같다. 그것도 시각적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어떤 맥락이 있었고,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고, 어떤 냄새가 났고, 주변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무언가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어딘가에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을텐데 그것을 끄집어 내는 방법을 잊어버린것인지도 모르겠다. 명상을 해보면 조금 도움이 될까? 어쩌면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했던 이야기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과 같이 있었던 시간과 장소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것이 아니다, 빈도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기억 못 할 정도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억할 만한 행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는 말이다.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고, 자기 전에는 매일 공상과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틈틈이 책도 읽고, 산책도 하고,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것들의 결실로써 남는 기억이 없다. 무언가를 어디에 메모를 해 두는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건망증과는 결이다른 기억상실. 기억상실까지는 아닌것 같다. 기억상실증보다는 미비한 기억소실. 아니면 너무 단조로운 삶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무언가들은 기억이 잘 나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핸드폰으로 하는 메모는, 핸드폰으로 적는 할 일 목록은 생산성 관점에서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소실한 기억은 생산성과는 관련이 없다. 특히 시기에 대해서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언가 기준 시점을 세우고 거기서 부터 일 주일 전, 한달 전, 일년 전 하는 식의 기억 방법은 효과가 없다. 일주일 전에 무엇을 했지? 한달전에는 무엇을 했지? 일년 전에는 무엇을 했지? 내가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임대 문의가 걸려있던 그 곳의 임대료를 물었던게 언제였더라? 물론 통화목록을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만약 핸드폰을 바꾸기 전의 일이라면? 대관절 내가 핸드폰을 바꿨던 것은 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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