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적 기억은 "꼬마 돼지 베이브" 인 것 같다. 어머니와 형과 함께 극장이 아닌 문예회관 같은 곳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문예회관에서 본 영화가 "꼬마 돼지 베이브" 인 것은, 사실 확실하지는 않다) 명절에 시골에 사촌 형들과 "사탄의 인형" 을 이불을 뒤집어 쓰며 봤던 기억도 오래된 기억중에 하나다.
중학생때는 학원 선생님의 인솔하에 안양 일번가에 있던 동시 상영관을 갔던 기억이 있다. 표 한장 가격으로 두개의 영화를 연달아 볼 수 있는 영화관이었다. 한동안 안양 일번가에 갈 때 마다 기억을 더듬어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려고 했지만, 금방 없어진 것인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안양 일번가 쪽에는 2001 아울렛 사거리에 영화관이 하나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중학생때는 범계역에 있는 뉴코아아울렛 영화관을 많이 갔었던 것 같다. 오래된 영화관이어서 좌석의 각도가 거의 평지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주공공이가 생겨서 그 영화관이 많이 갔다. 학교 행사 차 영화볼 일이 있으면 늘 가던 곳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인가 단체로 실미도를 보러갔었던 것 같다. 다른 선택지가 반지의제왕 이었거나 해리포터 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생때는 서울에 있는 영화관으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신촌에 있는 영화관을 가거나, 영등포에 있는 영화관을 가거나 했던것 같다. 대학생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적 체험은, 낙원상가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 아비정전을 보러 갔다가 이창동 감독님을 만나 싸인을 받았던 기억이다. (사람들이 많이 줄 서있길래 호기심에 줄을 섰는데, 나중에 보니 이창동 감독님이었다) 학교 동기들과 단체로 아이언맨을 보러 갔다가, 5~10분 동안 소리가 나지 않아서 처음부터 다시 봤던 기억도 있다.
중학교 친구와 2007년도 부산국제영화제를 갔던 기억도 있다. 친구 어머님께서 기차표를 내주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친구에게 디지털카메라를 빌려서 여행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첫날에 해운대 근처 목욕탕 (찜질방이 아니었다) 에서 3000원을 내고 목욕을 하고 잠을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장예매로 표를 구하기 위해 다음날 서둘러 나갔지만 줄이 굉장히 길었다. 어렵게 아무 영화나 세편을 예매했고, 연달아 본 다음에 거의 막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영화제를 같이 갔던 친구와, 디지털카메라를 빌렸던 친구와는 거의 연락을 하고 있지 않지만, 부디 잘 지내길 바란다.
영화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영화감정사? 라는 시험도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어디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아마 자주 보던 영화 잡지사에서 사설로 진행했던 시험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때 까지만 하더라도 씨네21 과 필름2.0 두 영화 잡지를 거의 매주 사서 봤다. 그 영화 잡지에서 늘 언급되던 키노 같은 잡지를 구해서 보고 싶었지만, 구하기가 어려웠다. 늘 그렇듯이 문화적 다양성과 풍부함은 현 시대가 아닌 이전 시대의 유물로써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특이한 영화를 많이 봤었던 것 같다) 그 친구의 추천으로 시계태엽오렌지를 봤다. 아마 그 때 부터 남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들을 먼저 함으로써 형성되는 문화적 허세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각종 웹하드로부터 이상하고 수상한 영화를 제법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탠리 큐브릭,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영화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시계태엽오렌지 라는 영화가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책을 읽는것에도 점점 흥미가 생겼던 것 같다.
다시 대학생때로 돌아와서 "영화와 서양문화" 라는 교양수업을 들었다 (상상력과 창의적 글쓰기와 함께, 내가 수강한 유일한 3학점 짜리 교양수업 이었다) 그 수업을 통해 영화적 이론과, 네오 리얼리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데이빗 린치) 등을 접했다. 나는 항상 다른사람들과 다르길 원했고, 남들과 똑같은 것을 읽거나 똑같은 것을 보면 결국 남들과 똑같은 생각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보지 않은 것을 보려고 많이 노력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지적 허영심이 그런 생각을 이끌었던 것 같다.
한때는 진지하게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작가가 되어 영화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 평론을 하거나 아니면 최종적으로 영화 감독이 되는 것이다. 물론 고민은 고민으로 그치고 말았다.
왓챠라는 어플이 처음 나왔을 때가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영화를 봤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600편이 넘는 영화에 평점을 매겼다.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영화를 잘 보게되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OTT 서비스를 통해 집에서 영화를 본다거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빈도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뭐랄까 요즘 영화는 너무 길고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최적 러닝타임은 90분이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러한 컨텐츠로 내 인생을 더 이상 채우고 싶지 않다. 그리고 누군가와 같이 영화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영화의 전개를 계속 예측하며 옆사람에 말한다. 나의 예측이 맞았을 때는 우쭐하는 기분이 든다 (예측이 엇나간다 하더라도, 나의 예측대로 진행됐어야 한다는 지적을 늘 하곤 한다)
좋은 영화와 재미있는 영화는 다르다. 재미는 없지만 좋은 영화가 분명히 있고, 재미는 있지만 좋지 않은 영화도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물론 좋고 재밌고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내가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한다. 내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좋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 또한 비난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물론 도덕적인 범주 안에서다) 소위 말하는 "인생 영화" 라는 유행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 너무 짧은 시간을 살았을 뿐더러, 봐야할 영화중에 아주 조금만을 봐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추천해 드릴 수 있다. 일단 조니뎁의 베니와 준, 록스탁앤투스모킹배럴즈 그리고 중경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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