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는 알레르기 비염과 함께 찾아오곤 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여름에서 가을이나, 가을에서 겨울은 기온이 낮아지기 때문에 콧물이 흐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날씨가 풀리는 겨울에서 봄이나, 봄에서 여름은 알레르기 비염의 영향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나는 제법 독한 비염약을 선호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비염약 반개를 먹으면 하루를 버티기에 충분하다, 아침이 제일 예민하고 오후로 갈수록 안정적인 변화도 한몫 하는 것 같다) 비염약을 악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녁에 잠이오지 않거나, 장거리 비행을 할 때는 고의적으로 비염약을 먹고 잠에 드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변화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시간의 변화가 더욱 그렇다. 주변환경에서 느껴지는 봄꽃의 개화, 꽃이 지고 잎이 나고, 낙엽이 되고 다시 잎을 모두 잃는 나무들에게서 시간은 여전히 그리고 바쁘게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엊그제는 일찍 퇴근하고 아내를 만나 석촌호수에 벚꽃구경을 갔다. 연례행사로 가는 것 같다. 벚꽃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구경도 하고, 벚꽃 사진도 찍고, 벚꽃 사진을 찍는 아내를 찍고, 떨어지는 꽃잎을 손으로 낚는 시도를 한다. 개나리와 목련 그리고 벚꽃들이 봄이 왔음을 알린다. 목련은 필 때는 예쁘지만, 질 때는 아름답진 않다. 예전 살던 아파트에 5층 높이만한 벚꽃이 피었던 기억이 난다.
토요일에는 일찍 일어나, 호암미술관 벚꽃길을 다녀왔다. 어제의 석촌호수는 벚꽃이 만개했는데, 호암미술관은 아직 만개하지는 않았다. 아마 산속에 있고, 저수지도 있는터라 기온이 낮아서 그런 것 같다. 다행히, 다음주 까지 벚꽃을 만끽할 시간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봄은 흔히 비유적으로 무언가가 가장 아름답거나 찬란한 시간, 혹은 아름답거나 찬란한 시작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누구누구의 봄, 봄과 같이 시작하는 무엇무엇 등이 그렇다. 나의 봄은 언제였을까? 내가 가장 아름다웠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던 시절은 그 시간은 언제였을 까. 모든 벚꽃들이 한번에 피지 않고, 한 나무에서도 가지마다 다른 시기에 꽃이 피기에, 사람마다 찾아오는 봄의 시절은 모두 다르겠지. 나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지나쳤던 것일까? 그 봄이 오면 나는 그것이 봄인지 알 수 있을까?
봄이 오면 대청소를 한다. 겨울옷을 집어넣고, 얇은 옷을 꺼냈다. 겨우내 묵은 창틀의 먼지들과, 눈과 비에 얼룩졌던 창문을 닦았다. 겨울 이불을 세탁해서 넣어두고 봄 이불을 꺼냈다. 히터와 가습기를 닦아서 창고에 넣어뒀다.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할 약속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으로는 여름을 맞이하는 것이 두렵고, 겨울을 놓아주는 것이 섭섭하다. 춥고 길었던 밤을 나는 그리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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